AI 전환기, ITSQF 38개 직무의 지도가 다시 그려진다
"AI가 내 직무를 어디까지 바꾸는가." 9개 직종 38개 직무에 걸친 IT 종사자라면 지금 누구나 품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시선을 스킬에서 직무로 옮겨야 한다. 새 도구 하나를 익히는 문제가 아니라, 직무의 경계와 요구 역량 자체가 다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창간호는 ITSQF(IT분야 역량체계) 직무 체계라는 지도를 펼쳐 두고, 그 위에서 어떤 직무가 어떻게 재정의되는지 좌표를 짚는다. 이번 호는 그 지도의 해상도를 두 방향으로 높였다. 하나는 해외 역량 프레임워크와의 비교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임금·채용 데이터라는 현장의 좌표다.
AI는 개별 스킬이 아니라 직무를 재편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55개국 1,000여 고용주를 조사한 「일자리의 미래 2025」(2025년 1월)에서 응답 기업의 86%가 "2030년까지 AI·정보처리 기술이 사업을 바꿀 것"이라고 답했다. 가장 빠르게 수요가 느는 스킬로는 'AI·빅데이터'가 꼽혔고, 기업의 3분의 2가 2030년까지 AI 관련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WEF는 AI·머신러닝 전문가가 '증가율(%)' 기준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할 뿐, 늘어나는 절대 인원은 농업·배송 같은 비IT 직군이 더 크다고 못 박았다. 즉 'AI 직무가 가장 빠르게 큰다'는 말과 'AI 직무가 가장 많아진다'는 말은 다르다.
변화의 본질은 새 직무 몇 개가 생기는 데 있지 않다. 기존 직무가 다루는 도구와 요구 역량이 통째로 이동한다는 데 있다. AI가 특정 부서의 전문 영역으로 격리되는 게 아니라 기획·설계·개발·운영이라는 IT 생애주기 전 구간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호는 스킬 목록이 아니라 직무 지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지도의 새 좌표: 인공지능 4개 직무는 어디에 있나
ITSQF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용노동부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현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KOSA)가 함께 만든 SW산업 최초의 객관적 역량체계다. 협회 연혁을 따라가면 2014년 연구에 착수해 2018년 시점 보도에서 9개 직종 28개 직무로 확정됐고, 당시에도 "직종과 직무 내용은 해마다 보완·개선한다"고 밝혔다. 이후 2019년 ITSQF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SW)기술자 임금실태조사가 시작됐고, 2020년에는 희망 기업을 대상으로 한 현장 보급·확산이 이어졌다. 현행 체계가 IT분야 38개 직무(가상융합분야 9개 직무는 별개 체계)로 넓어진 것은 이 연차 개편의 결과다.
이 지도에서 인공지능은 한자리에 모여 있지 않다. 인공지능서비스기획은 IT컨설팅 및 기획 직종에, 인공지능아키텍처는 IT아키텍처에, 인공지능SW개발은 SW개발에, 인공지능서비스관리는 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각각 흩어져 있다. AI가 특정 부서의 전문 영역이 아니라 IT 생애주기 전 구간에 스며든 방식이 직무 배치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다만 이 4개 직무가 정확히 어느 개정 회차에 신설됐는지를 명시한 1차 자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여기서는 "28개에서 38개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편입됐다"까지만 말할 수 있다.
지도를 그리는 두 가지 방법: 직무를 새로 만들 것인가, 스킬로 녹일 것인가
AI 역량을 역량체계에 반영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갈린다. 영국에 기반을 둔 글로벌 디지털 역량체계 SFIA(Skills Framework for the Information Age)는 2024년 10월 SFIA 9를 공개하면서 AI를 별도의 독립 전문분야로 분리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대신 기존의 7단계 책임 수준 체계 안에 AI 역량을 통합하고, 꼭 필요한 곳에만 스킬을 더했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데이터 윤리(AIDE, Artificial intelligence and data ethics)'를 신설하고 기존 '머신러닝(MLNG, Machine learning)' 스킬을 개정하는 데 그쳤다. SFIA는 그 이유로 "전문분야 사이에 인위적 경계를 만들지 않아 직무 이동성과 리스킬링을 돕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ITSQF는 정반대에 가까운 선택을 했다. AI를 횡단적 스킬로 얹는 대신, 인공지능서비스기획·인공지능아키텍처·인공지능SW개발·인공지능서비스관리라는 4개 직무를 새로 만들어 4개 직종에 나눠 배치했다. 요약하면 "AI 직무를 새로 만든다(ITSQF)"와 "기존 직무에 AI 스킬을 녹인다(SFIA)"의 설계 철학 차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문제는 아니다. 두 체계의 수준 척도를 1대 1로 맞대응시킬 근거도 없다. 주목할 것은, 접근이 정반대인데도 두 체계가 공유하는 전제가 같다는 점이다. AI는 소수의 전문 직무만의 것이 아니라 전 직무에 스며드는 역량이라는 인식이다. 직무를 쪼개든 스킬로 녹이든, 결국 지도 전체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생산성의 착시: 속도는 올랐지만 품질 지표는 흔들린다
직무 재편이 가장 먼저 체감되는 현장은 SW개발이다. 그런데 AI 코딩 도구를 둘러싼 수치는 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GitHub이 Accenture와 진행한 통제 실험에서 Copilot을 쓴 개발자는 같은 과제를 55% 빠르게(26분 대 46분) 끝냈다 — 이 수치는 도구 공급사 자체 연구라는 이해관계를 함께 봐야 한다. 반면 구글 DORA의 2024년 보고서는 AI 도입이 25% 늘 때마다 배포 안정성이 약 7.2%, 처리량이 약 1.5%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동시에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은 "보통에서 매우 큰" 생산성 향상을 체감했다고 답해, 개인의 체감과 조직의 지표가 엇갈렸다.
코드베이스를 들여다본 결과도 경고음을 낸다. 코드 분석기관 GitClear가 2억 1,100만 줄을 분석한 보고서(2025년 2월)에서 5줄 이상 중복 코드 블록이 2024년 한 해 8배로 늘었고, 복사·붙여넣기 줄 비중은 2020년 8.3%에서 2024년 12.3%로, 반대로 기존 코드를 다듬는 리팩터링('moved') 줄 비중은 24.1%에서 9.5%로 급감했다. 2024년은 복붙 줄이 리팩터링 줄을 처음으로 넘어선 해였다.
세 결과는 서로 다른 것을 잰다. 개인의 코딩 속도, 조직의 배포 안정성, 코드베이스의 유지보수성이다. 종합하면 지금까지의 근거는 "개인이 코드를 쳐내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조직 차원의 품질·안정성 지표에는 악화 신호가 함께 나타난다"는 쪽에 가깝다. AI 코딩 시대의 개발 역량이 '얼마나 빨리 짜느냐'에서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남길지 판단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파동은 전 직무에 닿는다: 품질·기획·감리의 부상
AI의 영향은 개발 직무에만 머물지 않는다. KOSA가 약 1,100개 기업·3만 7,436명을 ITSQF 기준으로 조사한 2025년 SW기술자 임금실태조사에서 일 평균임금은 41만 4,762원으로 전년 대비 4.7% 올랐다(2025년 9~10월 조사). 흥미로운 것은 상승률 상위가 AI 직무가 아니라 품질·테스트·감리 계열(각각 14.5%·14.1%·14.0%)이었다는 점이다.
KOSA는 그 배경을 두 갈래로 설명했다. 하나는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 확산과 IT 환경 복잡성 증가로 품질·안정성·리스크 관리 역량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 정보화 사업의 초점이 신규 구축에서 고도화·안정적 운영으로 이동하면서 기획·품질·감리 역할의 비중이 확대된" 것이다. 실제로 같은 조사의 월 평균임금 순위에서도 상위권은 기획·마케팅·아키텍처 계열이 차지했고(조사 라벨 기준 IT기획자 약 1,185만 원, IT마케터 약 1,179만 원, IT아키텍트 약 1,110만 원 순), 일 평균임금 최상위 역시 IT기획자(57만 8,206원, 17개 직무 중 1위)·IT아키텍트(54만 1,621원)였다. 응용SW개발자의 일 평균임금(37만 8,250원)과 견주면, 대가의 무게중심이 '무엇을 얼마나 만드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판단·설계·검증하느냐'로 기운 구도가 드러난다.
여기서 인과를 앞질러선 안 된다. KOSA는 상승 배경으로 디지털 전환(DX)·클라우드·시스템 복잡성을 들었을 뿐, "AI 때문에 특정 직무 임금이 올랐다"고 말하지 않았다. AI는 그 복잡성을 키우는 여러 축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 근거에 맞다. 다만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검증하고 감리하는 직무의 무게가 커진다는 흐름 자체는 읽어둘 만하다.
채용 시장: 문은 좁아지고, 조준은 정밀해진다
임금 지표가 직무의 '값'을 보여준다면, 채용 지표는 직무의 '문'을 보여준다. 그리고 2026년의 문은 전체적으로 좁아지되 조준은 정밀해지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2026년 국내 IT·개발 채용 시장은 '규모 축소·경력직 선호·정밀 채용'으로 요약되며, 신입·주니어 공고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채용 플랫폼·컨설팅 분석 등 2차 자료 기준). 기업의 관심이 "얼마나 많이 뽑느냐"에서 "누구를 뽑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채용 방식에서도 이 변화가 확인된다. '수시채용만 실시'하는 기업 비율은 2023년 67.4%에서 2025년 70.8%로 올라, 정기 공채는 사실상 소멸 국면에 들어섰다.
문이 좁아지는 와중에도 수요가 상대적으로 집중되는 직무는 뚜렷하다. AI·머신러닝 전문가, 데이터 엔지니어, DevOps, 백엔드·풀스택이 반복해서 거론된다. 가트너는 2026년 채용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AI 혁명과 비용 압박'을 지목했다. 채용의 절대 규모가 줄어드는 국면에서도 AI가 직무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는 신호가, 이번에는 국내 채용 측에서도 관측되는 셈이다.
수요·공급 지형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SPRi의 2024년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국내 AI기업 2,517개 전수조사)에서 기업의 최대 애로사항은 2023년 'AI 인력 부족'에서 2024년 '투자유치 어려움'으로 바뀌었고, 인력 부족률도 낮아졌다. SPRi는 이를 "산업이 안정 성장 궤도에 들며 과잉 수요가 완화된 것"으로 해석했다. AI 인력이 늘 부족하다는 통념과 달리, 특정 시점의 채용 병목은 완화될 수도 있다는 신호다. 문은 좁아지고, 뽑는 쪽은 더 정밀해지고, 인력 부족의 아우성은 잦아든다 — 세 흐름이 동시에 가리키는 것은 '머릿수'보다 '역량의 결'이 채용을 가르는 국면이다.
당신의 직무는 지도의 어디에 있나
이 지도가 주는 좌표는 두 축이다. 하나는 '내 직무가 AI를 만드는 쪽인가, AI를 쓰는 쪽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내 역량이 산출물의 양에 걸려 있나, 판단·검증에 걸려 있나'이다. 인공지능 4개 직무가 AI를 만드는 쪽의 최전선이라면, 나머지 직무 대부분은 AI를 도구로 흡수하며 역량 축이 판단·검증 쪽으로 이동하는 중으로 보인다.
이런 직무 단위의 재편은 AI가 불붙이기 전부터 이어져 온 흐름이기도 하다. kt ds는 AI 전환기 이전인 2017년에 세 개 직무로 ITSQF를 도입했고, 이듬해 대상 직무를 5개 더 늘렸다. AI는 이 흐름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임금·채용 데이터와 해외 프레임워크의 설계 방향이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직무의 경계는 고정된 게 아니라, 역량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다시 그어지고 있다. 결국 관건은 'AI가 내 직무를 없애는가'가 아니라 '내 직무의 역량 축이 어느 쪽으로 이동하는가'다. 이번 호의 나머지 지면은 그 이동의 방향을 직무별로 짚는다.
실무 시사점
- 인공지능서비스기획: AI 인력 수급이 안정 궤도에 든다는 신호(SPRi 2024)는 '인력만 확보하면 된다'는 기획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확보 난도가 아니라 투자·수익 설계로 기획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 인공지능아키텍처: AI가 기획·설계·개발·운영 전 구간에 흩어져 있는 만큼, 특정 모델을 얹는 설계가 아니라 데이터·모델·운영이 맞물리는 플랫폼 관점의 설계 역량이 핵심이 된다(상세는 이번 호 딥다이브 'AI 플랫폼 아키텍처' 참조).
- 인공지능SW개발: 속도 지표와 품질 지표가 엇갈리는 국면이다. 도구가 뽑아낸 코드를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느냐보다, 복붙·중복이 쌓이지 않게 걸러내는 리뷰·리팩터링 역량이 차별점이 된다.
- 인공지능서비스관리: AI 서비스는 배포 이후 안정성 지표가 흔들릴 수 있다(DORA 2024). 모델·데이터의 변화까지 관측 대상에 넣는 운영 역량을 준비할 때다(상세는 이번 호 실무 노트 'AIOps' 참조).
- 전 직무(광역): 자신의 직무가 'AI를 쓰는 쪽'이라면 재편의 초점은 산출물의 양이 아니라 판단·검증으로 옮겨간다. SFIA가 AI를 횡단적 스킬로 다루듯, 인접 직무의 AI 스킬을 흡수하는 리스킬링이 곧 경쟁력이 된다. ITSQF 지도에서 내 직무의 위치와 인접 직무를 먼저 확인해, 다음 역량 축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부터 파악하라.
- 채용을 준비하는 개인: 정기 공채가 사라지고 수시·정밀 채용으로 이동한 만큼(수시채용만 실시 70.8%), '언제 뜨는 공고를 노리느냐'보다 '어느 직무의 어떤 역량으로 조준되느냐'가 관건이다. 수요가 집중되는 직무(AI·ML, 데이터 엔지니어, DevOps 등)와 내 직무의 접점을 미리 넓혀 두는 편이 유리하다.
참고 자료
- The Future of Jobs Report 2025 (World Economic Forum) — 2025-01
- IT분야역량체계(ITSQF)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 조회 2026-07-15
- [IT분야 역량체계]ITSQF, 다양한 능력 반영해 인재 평가 (전자신문) — 2018-10-09
- SW산업협회, ITSQF 희망 기업 모집 (ZDNet Korea) — 2020-05-14
- SFIA 9 – a framework for AI skills (SFIA Foundation) — 2024-10
- Research: Quantifying GitHub Copilot's impact in the enterprise with Accenture (GitHub Blog) / arXiv 2302.06590 — 2023
- Accelerate State of DevOps Report 2024 (DORA / Google Cloud) — 2024
- GitClear AI Copilot Code Quality 2025 (PDF) — 2025-02
- 디지털 전환 가속에 SW 기술자 몸값↑ (ZDNet Korea) — 2025-12-23 (원자료: KOSA 2025 SW기술자 임금실태조사)
- SW기술자 일평균 임금 41만 4,762원…개발보다 '기획·관리' 부각 (아이티데일리) — 2025-12-23 (원자료: KOSA 2025 SW기술자 임금실태조사)
- 국내 AI 시장 6兆 돌파…성장 궤도 안착 (전자신문) — 2025-05-01 (원자료: SPRi 2024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
- SPRi 소프트웨어통계포털 — 조회 2026-07-15
- 신입 공고↓·쉬는 청년↑…2026 채용 트렌드 세 가지 (ZDNet Korea) — 2026-01-20
- 2025년 개발자 채용 트렌드와 2026년 전망 (코드트리 블로그) — 발행일 미상 (2차 자료)